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36) 레이디 맥베스는 진짜 악녀인가? 권력 앞에 선 여성의 두 얼굴

teemoessay 2025. 7. 24. 12:13

레이디 맥베스는 진짜 악녀인가 – 권력 앞에 선 여성의 두 얼굴

– 야망인가, 생존인가, 혹은 시대가 만든 ‘악녀’의 얼굴인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야망과 죄, 광기와 파멸의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은 주인공 맥베스의 타락에 집중하지만,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진짜 시동은 바로 레이디 맥베스다.

 

그녀는 남편을 부추겨 살인을 감행하게 하고, 이후에도 왕권을 지키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주저하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 때문에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 중 대표적인 ‘악녀’로 불리며, 종종 마치 마녀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볼 수 있다. 정말 그녀는 타고난 악인이었을까? 혹은 단순히 권력욕에 눈이 먼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적 제약과 여성으로서의 한계 속에서 유일한 방식으로 욕망을 표현하려 한 존재였을까?

 

이 글에서는 레이디 맥베스를 ‘악녀’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권력과 역할의 이중성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복잡한 인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책임, 사회가 부여한 성 역할, 그리고 내면의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한, 현대 독자에게 더 큰 질문을 던지는 윤리적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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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실현자, 혹은 여성 억압 구조의 대리자?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가 예언을 듣고도 망설일 때, 그를 꾸짖으며 “너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단호하고 치밀하며, 살인을 도덕적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 행동의 실천 여부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실용주의자로 보인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정치적 권력과는 거의 단절된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편을 통한 우회적인 권력 획득이었다. 이 지점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단순한 ‘야망 덩어리’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전복하려 한 여성의 초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녀는 남편의 약함을 비난하면서, 자기 손으로 피를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획을 철저히 실현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권력욕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섞여 있다.

 

당시 여성은 “행동하는 인간”이 될 수 없었고,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의 행동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편을 조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 남편을 ‘이용’해야만 했던 시대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녀는 악녀가 아니라, 감정을 억압당한 비극의 인간이었다

레이디 맥베스의 계획과 언행은 매우 냉철하고 강인해 보인다. 그녀는 “내 젖가슴에 입을 대는 아이를 잡고 그 머리를 깨버릴 수 있다”고 말하며, 전통적인 여성성과 모성을 철저히 부정한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악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는 여성의 감정적 본성과 도덕적 양심을 철저히 억누름으로써, ‘남성적 행동’을 강요받는 시대적 구조에 적응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억압은 결국 그녀를 무너뜨린다. 극이 진행될수록 레이디 맥베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손에 묻은 피가 씻기지 않는다는 환각을 본다. “이 손에서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자신이 억눌러왔던 감정과 윤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그녀는 강해 보였지만, 사실은 지속적인 감정 억압과 죄의식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간 인간이었다. 악인은 자기 죄를 감정 없이 소비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든 죄의 무게를 끝까지 견디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단지 ‘악녀’가 아닌, 감정과 야망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파멸한 비극적 인간이다.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단지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죄의 감당 능력을 초과한 인간이 맞이한 파국이다.

 

권력 앞에서 무너진 것은 맥베스가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였다 

맥베스는 살인을 반복하며 무감각해진다. 그는 점점 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을 합리화하고, 냉정한 폭군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레이디 맥베스는 다르다. 그녀는 첫 번째 살인 이후부터 이미 내면에서 무너져가고 있었고, 그 균열은 점차 그녀를 고립과 광기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역설적인 윤리의 그림을 그린다. 살인을 주도한 자는 망가졌지만, 실행한 자는 강해졌다. 이는 죄의 행위보다, 그 죄를 얼마나 윤리적으로 감당하려 했는지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메시지다.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을 쥐려 했지만, 권력을 유지하는 냉정함은 없었다. 그녀는 통치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버릴 수 없는 존재였기에 파멸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은 권력의 실패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 인간성을 잃지 못한 자의 최후로 읽힌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독자나 사회가 맥베스의 악함보다 레이디 맥베스의 행동을 더 자주 ‘비도덕적’이라 판단한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여성 인물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가? 그녀가 죄를 저질렀기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죄를 끝까지 인간적으로 받아들였기에 무너졌다는 점에서, 그녀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라, 윤리적 의식이 강했던 인물이었다.

 

레이디 맥베스는 악녀가 아니라, 시대가 허용하지 않은 인간성의 실험자였다.

 

그녀는 죄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그 죄를 끝까지 품으려 했기에 더 깊이 무너졌다.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통해 묻는다. “권력을 선택한 여성은 언제나 악녀로 불려야 하는가?” 그리고 “죄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인간은, 과연 악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