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의 자베르는 정말 악인이었을까? – 법과 정의 사이에서 무너진 인간의 초상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는 수많은 인상적인 인물이 등장하지만,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는 바로 경찰 자베르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끈질기게 쫓는 인물로, 종종 ‘냉혈한’이나 ‘악인’처럼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단순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인 정의’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법을 믿었고, 질서를 믿었으며, 인간은 그 체계 안에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자베르는 과연 악인이었을까? 아니면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희생양이었을까? 이 글에서는 자베르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가 상징하는 ‘법의 인간’이 왜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의 비극은 단지 주인공을 괴롭힌 악역의 종말이 아니라, 신념이 현실과 충돌할 때 인간이 얼마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다.
자베르는 법의 화신인가, 법에 사로잡힌 인간인가?
자베르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법’이라는 틀에 종속시킨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범죄자와 매춘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런 자신의 출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절대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자베르가 법을 신봉한 이유는 단순히 직업적인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그는 법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고, 그것만이 자신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자베르는 법을 어기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 발장이 아무리 선한 일을 했더라도, 그는 전과자이며 도망자였고, 그것이 자베르에게는 명백한 ‘질서의 파괴자’였다. 자베르는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왔다. 그는 법을 어긴 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며, 법 위에 인간적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런 면에서 자베르는 법의 화신이라기보다는, 법의 도구가 된 인간, 즉 스스로의 판단보다 체계의 논리를 우선시한 존재였다.
장 발장을 통해 흔들리는 세계관
자베르가 평생 믿어온 세계는 장 발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단순한 전과자로 인식했고,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장 발장이 보여준 숭고한 행동들, 예를 들어 마들렌 시장으로서 보여준 도덕성과 헌신, 코제트를 위한 희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베르 자신의 생명을 살려주는 선택을 경험하면서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베르는 법을 위반한 자가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위대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내면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그는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믿었는데, 장 발장은 법을 어기고도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
이 모순은 자베르에게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정체성 전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되었고, 그 판단 불능의 상태가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자베르가 장 발장을 죽이지 않고 풀어주는 장면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법과 인간성 사이에서 그가 감당하지 못한 갈등의 폭발이었다. 이 장면은 자베르가 이미 ‘법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부정당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자베르는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
자베르의 자살은 단순한 패배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가치 체계의 무너짐에서 비롯된 정체성 붕괴의 결과다. 그는 장 발장을 체포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가 믿어온 ‘절대적 법의 질서’에 대한 배신자가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법을 따르면서도 인간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자베르는 그 인정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완전히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옳다고 믿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그 믿음 안에서 자신을 통제했고, 사회에서 의미를 부여받았으며, 존재 이유를 찾았다.
그런데 그 기반이 무너진 순간, 자베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완전히 잃게 된다. 자살은 비겁한 도피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삶의 궤적이 완전히 충돌한 인물이 감당할 수 없었던 혼란의 종착지였다. 자베르에게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판단 불가능성 속에서 택한 유일한 결정이었다. 그는 더 이상 법을 믿을 수 없었고, 동시에 그 어떤 대안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베르는 악인이 아니라, 구조의 희생자다
자베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악인’이 아니다. 그는 타인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었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법을 절대적인 질서로 신봉한 ‘도덕적 인간’이었다.
문제는 그 도덕이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빅토르 위고는 자베르를 통해 제도화된 정의가 인간성을 외면할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자베르는 시대의 산물이며, 구조의 희생자였다. 그는 빈곤한 출신을 부정하고, 권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한 경찰’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법에 철저히 순응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법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자베르는 이 불완전성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시대가 만들어낸 슬픈 아이러니였다.
결국 자베르의 죽음은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믿어온 정의가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악인이 아니라, 가장 충실한 체제의 부속품으로 살다가, 그 체제에 의해 파괴된 인간이었다.
자베르는 장 발장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단순한 악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다. 그는 법과 질서의 절대성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인간의 도덕성과 연민, 그리고 복잡한 현실은 그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뒤흔들었고, 그 혼란은 결국 자멸로 이어졌다. 그는 악인이 아닌,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한 인간이었다.
'문학 속 인물 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 속 인물 분석(6) 마담 보바리, 욕망의 화신인가 시대의 피해자인가? (1) | 2025.07.01 |
---|---|
문학 속 인물 분석(5) 위대한 개츠비는 왜 과거를 되살리려 했는가? (0) | 2025.07.01 |
문학 속 인물 분석(3)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아있음을 자각했는가? (0) | 2025.06.30 |
문학 속 인물 분석(2)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걸까? (0) | 2025.06.30 |
문학 속 인물 분석(1) 햄릿은 왜 복수의 타이밍을 끝까지 미뤘을까? (0) | 2025.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