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2)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걸까?

teemoessay 2025. 6. 30. 07:00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걸까?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한 자유, 그리고 파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수많은 문학 작품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처절하게 다룬 소설이다.

안나는 누구보다 우아하고 지적인 귀족 여성으로서,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브론스키라는 젊은 장교와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삶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불륜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당시 러시아 사회가 여성의 욕망과 자유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통렬하게 드러내며, 그 속에서 안나가 왜 모든 것을 잃어야만 했는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걸까? 아니면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자유, 욕망, 존재감을 찾아가다 파멸에 이른 것일까?

 

이 글에서는 안나의 선택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그녀의 내면과 심리를 중심으로 그 선택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

안나는 왜 브론스키를 선택했는가?

안나는 남편 카레닌과의 결혼 생활에서 감정적 단절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는 완벽한 귀부인처럼 보였지만, 정작 내면에서는 공허함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레닌은 이성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로, 안나를 이해하기보다 '관리'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브론스키의 존재는 안나에게 감정의 회복, 즉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설렘과 자유를 주었고, 안나는 그 감정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고자 했다. 그녀가 브론스키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육체적 끌림이나 반항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나는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인간으로 느껴지고, 감정의 주체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안나의 선택은 사회적 기준으로는 '파괴적'이었지만, 인간으로서 감정을 되찾기 위한 절박한 결정이었다.

 

사랑이 아닌 ‘존재의 확인’을 위한 선택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통해 사회적 틀과 도덕적 잣대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녀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인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안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등을 돌렸다. 그녀는 아들로부터 분리당했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마저 흔들렸다. 브론스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안나는 자신이 의지했던 사랑조차 흔들리자,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는다. 그녀가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선택은 처음엔 자유였지만, 결국엔 또 다른 감정적 감옥이 되었고, 그녀는 어디에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무너져 갔다.

 

안나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진짜 원했던 건 '버림받지 않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녀는 남편도, 아들도, 사회적 지위도, 평판도 모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원했던 것은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안이었다. 그녀는 브론스키만이라도 자신을 끝까지 지지해주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감정은 식고, 그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안나는 자신이 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고, 그 감정은 점점 집착으로 변했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 했지만, 그 자유 속에서 외로움과 불안에 질식하고 말았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에서조차 감정의 평형을 유지하지 못했고, 상대방의 사랑을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 확인이 끊기고, 감정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 그녀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외에는 다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지 않는 단 하나의 감정적 고정점이었다.

 

사랑은 도피처였고, 비극은 현실이었다

안나의 선택은 당대 러시아 귀족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똑했고, 감정에 솔직했으며, 동시에 매우 고독했다. 브론스키와의 사랑은 그 고독을 피하고자 한 하나의 도피처였을 뿐이다.

 

그러나 도피처로 선택한 사랑이 현실의 고통보다 더 가혹한 불안을 가져오자, 안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도망쳐왔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그 자유는 그녀를 사회 밖으로 완전히 밀어냈다.

 

죽음은 안나에게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고립된 존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나를 단순히 ‘사랑에 미쳐 모든 걸 버린 여인’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존재를 회복하려 했던 인간이며, 감정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했던 주체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그 주체적 선택조차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그 갈등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안나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주체가 되기를 바랐던 인간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린 사람’이 아니라, 사회와 도덕,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 존재였다. 그녀의 비극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나도 협소했던 사회 구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