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3)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아있음을 자각했는가?

teemoessay 2025. 6. 30. 12:00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아있음을 자각했는가?

– 톨스토이가 말하는 ‘진짜 삶’과 ‘가짜 인생’의 경계에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쓴 중편 소설이다.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국의 한 법관으로, 겉보기에는 성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출세했고, 가족을 이루었으며, 사회적 지위도 갖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과 함께, 그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제대로 살아온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후회가 아니다. 그것은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죽음을 직면해야만 비로소 ‘삶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는 이반 일리치가 어떻게 죽음을 통해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는지를, 그의 감정과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분석하고자 한다.

문학 속 인물 분석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성공한 삶’은 왜 가짜였는가?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 기준으로만 보면 매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체계적인 공부를 했고,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상류층과 어울리는 사교 생활도 즐겼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적절하게 보이는 삶’을 꾸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는 부인이 싫어졌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일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승진을 좇았다. 그런 삶은 외적으로는 안정되고 단정했지만, 내적으로는 공허하고 무의미했다.

 

병이 찾아오고 나서야 그는 처음으로 자기 삶의 껍데기를 깨닫기 시작한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삶을 살았지만, 그게 과연 진짜였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그것은 평생 ‘사회적 허상’을 위해 살아온 자신에 대한 처절한 자각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동안 자신이 ‘살았다고 믿었던 삶’이 실은 얼마나 비어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고통이 그에게 던진 질문: 삶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이반 일리치가 병으로 고통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내면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육체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은 ‘정신적 외로움’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얻지 못한다. 가족은 그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불편한 문제로 여긴다.

 

그는 점점 더 고립되지만, 그 고립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묻는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 그는 늘 남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아왔지,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죽음조차 ‘예의 바르게’, ‘민폐 끼치지 않게’ 맞이하려 한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이 극에 달하면서, 그는 마침내 진정한 질문에 도달한다. “내가 잘못 살았던 건 아닐까?” 이 질문은 그를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깨우친다. 그 순간부터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려는 존재가 된다.

 

그는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감각, 즉 스스로의 삶에 주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까지: 자각의 시작

이반 일리치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 순간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그는 더 이상 의사에게 기대하지 않고, 가족에게 위로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위선과 외면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는 하인 게라심에게 진정한 따뜻함을 느낀다. 게라심은 그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인정하며 곁에 있어준다. 이반 일리치는 그런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연대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단지 끝이 아니라, 자각의 시작임을 이해한다. 죽음은 그에게 삶의 거울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그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감정을 느끼고, 자기만의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삶의 마지막에서야 그는 비로소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당신은 죽음이 다가오기 전, 과연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왔는가?"

 

죽음은 끝이 아닌 삶의 완성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단지 생명의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가짜 삶’에서 ‘진짜 삶’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마지막 순간에 경험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죽기 직전 이반 일리치가 느낀 변화다.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고통을 줄까 봐 눈물짓고, 가족을 위해 마지막 배려를 한다. 이 장면에서 그는 더 이상 사회적 가면을 쓴 법관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죽음은 오히려 그를 살아 있게 만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삶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삶도 포용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말하는 ‘삶의 진실’에 도달하는 하나의 통로다. 죽음은 피해야 할 재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다. 삶이란 타인을 위해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이라는 어둠을 통해, 빛나는 삶의 진실을 마침내 발견한 인물로 우리 기억 속에 남는다.

 

이반 일리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삶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고통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외로움은 그를 내면으로 이끌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내려놓고, 자기 삶을 직시함으로써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곧 그의 ‘삶의 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