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왜 끝까지 결단하지 못했는가?
– 우유부단한 왕자이자, 인간의 윤리적 고뇌를 상징한 존재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수많은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온 비극 작품이다. 왕의 아들이자, 대학을 다닌 지식인이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귀국한 햄릿은 당연히 빠르게 행동에 나서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끝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자기 안의 갈등을 되풀이한다.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로 시작되는 그의 독백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 중 하나다.
햄릿은 복수의 기회를 여러 번 잡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멈춘다. 많은 독자들은 이를 두고 ‘햄릿은 우유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판단은 과연 옳을까? 그는 정말 결단력 없는 인물인가? 아니면, 자신의 윤리와 인간적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고뇌하는 철학자였을까?
이 글에서는 햄릿의 결단 지연이 단순한 성격적 약점이 아니라,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윤리적 균형을 고민한 인간의 사유 과정이었음을 살펴본다. 그는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폭력 앞에서도 신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햄릿은 왜 망설이는가? – 복수 이전에 윤리를 본 인간
햄릿이 처음 복수의 동기를 얻는 계기는 유령의 등장이었다. 죽은 아버지의 유령은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독살했다고 말하며 복수를 요구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복수극 주인공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햄릿은 다르다. 그는 유령이 진짜인지, 자신의 정신 상태가 왜곡된 건 아닌지 의심한다. 그리고 한 인간의 생명을 끊는 일이 그저 복수의 당위성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는 클로디어스를 몰래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기도 중일 때 죽이는 것은 ‘죄를 사한 상태에서 죽게 하는 것’이기에 의미 없다고 판단한다.
이런 사유는 단지 ‘결단을 미룬 것’이 아니라, 죽음과 윤리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다. 햄릿은 단지 아버지의 원한을 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하는 폭력 역시 정의로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따져 묻는 인물이다.
그는 복수를 감정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며, 자신이 행하려는 정의가 또 다른 죄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고민은 햄릿을 우유부단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사실은 가장 윤리적인 인간으로 비춰지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의 ‘지연’은 인간적 약점이 아니라 철학적 실천이었다
햄릿이 계속해서 행동을 미루는 것은 단순한 공포나 성격적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그는 현실에서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인식하고 있었고, 그 불완전한 판단 위에서 살인을 감행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인간의 감정, 욕망, 광기와 같은 요인이 판단을 왜곡시킨다는 사실을 철저히 의식한다. 그래서 그는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의 죄를 입증하려 하고, 실제 반응을 확인한 뒤에야 확신에 가까워진다.
이 과정은 햄릿이 ‘진실’을 확인하려는 철저한 탐구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유령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를 믿는 대신, 감각과 관찰, 실증을 통해 진실을 파악하려는 현대적 이성의 인물에 가깝다.
또한 그는 자신의 복수가 단순한 개인적 분노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집요하게 고민한다.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그의 모습은, 고전 비극 속 주인공으로서는 예외적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복수와 정의,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의 주체임을 말하고 있다.
햄릿은 결국 결단했는가? – 행동과 죽음의 경계에서
햄릿은 마지막에서야 클로디어스를 직접 죽인다. 어머니 거트루드가 독을 마시고 쓰러지고, 친구 오필리아는 죽고, 자신도 독이 묻은 검에 찔리면서 모든 것이 붕괴되는 순간이다. 햄릿은 이때서야 더는 윤리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그는 이미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마지막 의무로 복수를 감행한다.
이는 앞서의 지연과 대비되는 강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 결단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상태에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정의를 남기기 위한 마지막 행위를 택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닉 호레이쇼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죽는다. 이는 ‘진실의 기록’을 요청한 것이며, 복수로 인해 왜 피비린내 나는 일이 벌어졌는지를 세상이 기억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결국 결단했지만, 그 결단은 복수로 환호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햄릿은 죽기 직전까지 고뇌한 인물이었고, 그 고뇌는 오히려 인간다운 면모를 극대화했다. 그는 가장 마지막에 가장 확고한 인간이 되었고, 그 순간에야 복수를 완성했다.
그의 비극은 ‘너무 늦은 행동’이 아니라, ‘너무 깊은 사유’의 결과였고, 그것이 『햄릿』을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철학적 비극으로 만든다.
햄릿은 우유부단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성과 윤리, 정의와 폭력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한 인물이었다. 그의 지연은 철학적 고뇌였고, 그의 결단은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복수의 기회를 미룬 것이 아니라, 그 기회가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자 했던 인간이었다. 햄릿의 망설임은 오히려 인간다움의 증거였다.
'문학 속 인물 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 속 인물 분석(19) 변신의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희생한 존재인가, 버림받은 인간인가? (0) | 2025.07.07 |
---|---|
문학 속 인물 분석(18)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왜 다아시를 거절했는가? (0) | 2025.07.06 |
문학 속 인물 분석(16)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악인이었는가, 정의를 착각한 지식인이었는가? (0) | 2025.07.04 |
문학 속 인물 분석(15) 데이지의 입장에서 본 ‘위대한 개츠비’ (1) | 2025.07.04 |
문학 속 인물 분석(14) 멜빌의 ‘배틀비’는 침묵을 택한 저항가인가, 무력한 방관자인가? (0) | 202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