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16)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악인이었는가, 정의를 착각한 지식인이었는가?

teemoessay 2025. 7. 4. 20:43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악인이었는가, 정의를 착각한 지식인이었는가?

–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질문: 인간은 어디까지 선을 넘어설 수 있는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단순한 살인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살인을 한 인간’이 아닌, ‘살인을 정당화한 인간’의 내면을 추적하는 철학적 소설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불평등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인물이다. 그는 “특별한 인간은 평범한 도덕의 틀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상 아래, 이자를 착취하는 노파를 살해한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후 그의 내면은 무너지고, 죄책감과 자기정당화, 광기와 구원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많은 독자들은 라스콜리니코프를 냉혈한 범죄자 혹은 위험한 이상주의자로 해석하지만, 그가 과연 악인이었는지, 아니면 잘못된 정의감에 사로잡힌 비극적인 지식인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이 글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과 그 이후의 고뇌를 중심으로, 그가 진심으로 악을 저지른 인간이었는가, 아니면 '정의'를 잘못 설계한 철학적 인간이었는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문학 속 인물 분석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왜 ‘정당한 살인’을 믿었는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처음부터 감정적 충동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는 철저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살인을 계획했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세상을 해치는 한 인간(노파)을 제거함으로써, 수많은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살인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그는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도덕을 넘어서 세상을 변화시켰으며, 그들의 위대함은 일시적인 ‘악’을 초월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다.

 

19세기 러시아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함께 개인의 도덕, 정의, 신앙이 붕괴하고, 인간이 신이 없는 세계에서 어떤 윤리를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절실하던 시기였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 윤리를 창조하려 한 인간’이었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고자 했으며, 그 실험을 통해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위대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실제 범죄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피가 흐르고, 인간의 생명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 앞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책감 없는 악인이었는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 이후부터 심각한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에 시달리며, 주변 인물들의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그는 자수하지도 않고, 완전히 죄책감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죄를 의식하고 자신을 심판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죄와 정의 사이에서 철저히 분열된 자아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라스콜리니코프는 단순한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이성과 윤리의 불일치’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입을 통해, “선의 이름으로 행한 악은 진정한 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악한 짓을 했지만, 그 행위가 과연 그를 완전히 악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그는 계속해서 소냐와 대화하며 구원을 갈망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시험한다.

 

결국 그는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이 선택은 그가 비로소 이론이 아닌 인간으로서 책임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악인이 아니라, 자기 윤리에 실패한 인간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비극은 살인 그 자체보다, 그 살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신념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그는 악한 의도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해 악을 허용하는 위험한 논리에 빠진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윤리의 창조자로 착각했고,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위험한 사유를 실천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 인물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인간이 윤리를 잃었을 때 어떤 혼란과 고통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단순한 살인범이 아니라, 절망적인 세계에서 새로운 윤리를 창조하고자 한 ‘실패한 철학자’이자 ‘좌절한 정의의 실험자’였다.

 

그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이 도덕적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시스템이 무너진 사회에서 ‘정의’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모두 ‘선한 의지’를 품고 있지만,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모든 질문을 몸으로 앓아낸 인물이다.

 

그의 고통은 살인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도덕을 잃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의 고통이기도 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선과 악 사이에서 새로운 정의를 만들고자 했지만, 그 정의는 인간의 고통을 수반했고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그는 죄를 의식했고, 결국 죄의 책임을 선택했다.

 

그의 비극은 살인이 아니라, 정의를 착각한 인간의 오만과 혼란이었다. 그는 죄를 통해 벌을 받았고, 벌을 통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