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14) 멜빌의 ‘배틀비’는 침묵을 택한 저항가인가, 무력한 방관자인가?

teemoessay 2025. 7. 4. 07:00

멜빌의 ‘배틀비’는 침묵을 택한 저항가인가, 무력한 방관자인가?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남자가 말한 것들

 

허먼 멜빌의 중편소설 『배틀비, 서기』는 19세기 미국 문학 속에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한 로펌 사무실에서 일하던 서기 배틀비가 점점 일을 거부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며, 그 침묵 속에서 서서히 말라 죽는 이야기지만, 이 단순한 줄거리에는 인간 존재와 사회, 자아와 저항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이 숨겨져 있다.

 

배틀비는 반복해서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아무런 이유나 해명 없이 기존의 업무를 거절한다. 그의 침묵은 단순한 무기력인가? 아니면 체제에 대한 무언의 반항인가? 이 글에서는 배틀비의 태도를 ‘무력한 방관’과 ‘조용한 저항’이라는 두 시선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수많은 말을 함축하고 있었고, 그 말 없음은 결국 말보다 더 강한 거부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문학 속 인물 분석 멜빌의 ‘배틀비’의 침묵

배틀비는 왜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는가? 

배틀비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조용하고 성실하며 정확한 일처리를 하는 모범적인 직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는 서서히 업무의 일부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사의 명령에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조용히 말할 뿐,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 표현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선택의 표현이자 자기 존재의 선언이었다.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이며, 비록 이유는 말하지 않지만 ‘따르지 않겠다’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배틀비는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과 무표정한 저항은 체제 안에서 ‘말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려는 처절한 시도다.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기계처럼 돌아가는 ‘노동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생산성이나 유용성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체계 자체에 묵묵히 저항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침묵은 방관이 아닌, 말 없는 반항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체제가 요구하는 모든 기대를 파괴한다.

 

침묵은 저항인가, 포기의 표현인가?

배틀비의 침묵이 어떤 방식의 저항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분명 절망적이다. 그는 점점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거리에서 쫓겨나 교도소에 수감된 채, 음식조차 거부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과정을 보면, 그의 침묵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자신만을 파괴한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배틀비는 실패한 저항자이자, 무력한 개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사회와 체계의 비인간성을 인식했지만, 그것을 바꿀 수단도, 다른 대안을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음’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세상과 싸우지도 않았고, 그저 사라져버림으로써 저항 아닌 저항을 감행했다. 이것이 과연 의미 있는 저항인가? 아니면 ‘살고 싶지 않음’이라는 감정의 우회적 표현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유효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속도와 요구에 지쳐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고 있다. 배틀비의 침묵은 그런 점에서 현대적 번아웃과 우울의 문학적 상징이기도 하다.

 

배틀비는 개인인가, 구조의 실패가 낳은 징후인가?

배틀비는 로펌이라는 조직 내에서 극단적인 비순응을 선택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드러내는 행위는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19세기 산업화 시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강요했던 비인간적인 노동과 감정 억압의 총합에 대한 거부로도 볼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실존적인 위기에 빠진 인물이지만, 그의 위기는 개인의 나약함이라기보다 사회 구조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품의 화자인 로펌 대표는 배틀비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에는 체계와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그를 내쫓는다. 그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조직이 허용할 수 없는 ‘비생산적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배틀비는 인간이 자아를 포기하고 살아야만 하는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말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하지 않음’이야말로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행동이며, 인간이 사회로부터 퇴출당하게 되는 정확한 이유다. 멜빌은 배틀비를 통해 “무엇이 인간을 사라지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침묵은 단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외면해온 구조적 문제의 증폭된 징후였다.

 

배틀비는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력한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와 체제에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의 침묵은 저항의 언어이자, 자기 존재를 끝까지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는 패배했지만, 그 실패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말하지 않을 자유’도 존재의 한 방식이며,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