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13)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괴물인가, 상처 입은 연인인가?

teemoessay 2025. 7. 3. 17:00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괴물인가, 상처 입은 연인인가?

– 사랑이 부재한 세계에서 탄생한 비극의 주인공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고전 문학 중에서도 가장 격정적이고, 모호하며,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사랑과 증오, 열망과 파괴를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많은 독자들이 히스클리프를 '복수의 화신', '감정적 폭군' 혹은 '도덕을 초월한 괴물'로 해석하지만, 또 다른 독자들은 그를 '사랑의 상처로 뒤틀린 인간', '버려짐과 배신으로 고통받은 존재'로 바라본다.

 

이 모순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층위가 바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역이 아닌,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입체적 캐릭터로 만든다. 이 글에서는 히스클리프가 단지 복수를 즐기는 괴물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을 잃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복수라는 형태로 감정을 왜곡한 상처 입은 연인이었는지를 탐구해본다.

 

그의 복수는 증오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잔재였고, 그 파괴는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잃은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문학 속 인물 분석 히스클리프의 복수심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왜 시작되었는가?

히스클리프는 처음부터 복수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고아로서 언쇼 가에 입양되어 사랑과 환대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차별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캐서린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히스클리프를 사람답게 대했고, 둘은 영혼의 쌍둥이처럼 서로에게 깊이 끌렸다. 그러나 캐서린은 계급과 현실, 체면 속에서 결국 히스클리프가 아닌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이 선택은 히스클리프에게 ‘자신이 사랑보다도 낮은 존재로 간주되었다’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는 버림받았다는 감정,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그의 복수는 단순히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세상 전체를 향한 항의였다. 그가 린턴 가의 재산을 빼앗고, 캐서린의 딸까지 지배하려 한 것은 자신이 잃은 것을 되찾으려는 일종의 ‘자기 복원’의 방식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사랑을 파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은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감정을 말할 언어를 잃은 인간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작품 전반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조종하고, 파괴하며, 복수한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 뒤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있다. 그는 배신당한 연인이면서도 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약해 보일까 두려워 감정을 증오로 위장했고, 결국 그 증오에 자신도 휩쓸린다. 그는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그녀의 무덤 곁을 떠나지 않고, 심지어 그녀의 유해 곁에 묻히기를 원한다. 이런 태도는 단순한 소유욕이나 병적인 집착이 아니라,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본 적 없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집착이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을 되돌려주려는 방식으로 복수를 택했다.

 

그러나 그 복수는 사랑의 진정성을 회복시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조차도 파괴했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살아있는 감정은 사라졌고, 그의 내면에는 오직 공허함만 남게 된다. 브론테는 히스클리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증오로 감정을 전이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조차 잃게 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감정을 잃고 언어를 잃은 감정 불능자였다.

 

히스클리프는 결국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인간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죽음의 순간까지 캐서린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꿈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세상의 어떤 복수도, 어떤 파괴도 그의 내면의 공허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는 성공적으로 재산을 차지했고, 원수들을 무너뜨렸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랑’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의 파괴는 외적인 성취였지만, 내면의 치유는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히스클리프는 ‘승리한 복수자’가 아니라, 패배한 연인이었다. 그는 삶의 끝에서 캐서린과의 재회를 꿈꾸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무덤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풍의 언덕 위의 고요함’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 장면은 히스클리프가 괴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미쳐버린 인간, 다시 말해 인간적인 고통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그의 복수는 사랑의 반대편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랑의 뒤틀린 또 다른 얼굴이었다. 우리는 그를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는 단지,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시대와 가혹한 삶의 희생자였다.

 

히스클리프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괴물이 아니라, 사랑을 잃은 고통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던 인간이었다. 그는 감정의 언어를 가지지 못했고, 그 결과로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의 복수는 사랑의 부재에 대한 절규였고, 그의 죽음은 사랑 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히스클리프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외면당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따르는지를 증명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