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11) 마담 보바리 vs 안나 카레니나 – 누구의 사랑이 더 절박했는가?

teemoessay 2025. 7. 3. 07:00

마담 보바리 vs 안나 카레니나 – 누구의 사랑이 더 절박했는가?

– 감정과 자유, 그 끝에서 마주한 두 비극의 여성

 

문학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비극적 여성 인물인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유사한 서사를 공유한다. 둘 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중,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며 가정을 벗어나고, 결국 파국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의 선택과 파멸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엠마는 문학 속 낭만주의적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며 파멸로 나아가고, 안나는 현실 속에서 강렬한 감정과 인간관계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몰락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이지만, 그 사랑의 성질, 동기, 절박함의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이 글에서는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를 비교하며, 각자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절박했고, 그 절박함이 왜 결국 파괴로 이어졌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사랑을 갈망한 두 여성은 결국 사랑 그 자체에 무너졌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문학 속 인물 분석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 비교분석

엠마 보바리 – 사랑이 아니라 환상을 좇은 감정의 중독자

엠마 보바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기 전부터 소설을 통해 그것을 정의하고 규정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수도원에서 낭만주의적 사랑 소설을 탐독하며, 격정적이고 극적인 사랑을 인생의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경험한 결혼은 평범하고 단조로웠고, 남편 샤를은 그녀가 기대한 어떤 극적 감정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엠마는 현실에서 사랑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 사랑’을 구현해줄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로돌프, 레옹 등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이상을 투사했지만, 상대는 그녀의 환상만큼 뜨겁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이해나 애착보다,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고 자신이 꿈꿔온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엠마는 사랑에 ‘절박하게 매달린’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살아있다는 감각을 얻고 싶었던 감정 중독자에 가까웠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현실을 부정했고, 그 결과 스스로의 삶과 감정을 끝까지 왜곡하며 파멸했다.

 

안나 카레니나 – 감정의 확신을 끝까지 밀어붙인 주체적 인간 

안나 카레니나는 엠마와 달리 처음부터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감정 없는 형식적인 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는 기회를 맞는다. 안나는 이 감정을 단지 ‘욕망’이나 ‘일탈’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 감정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 또한 감당하려 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려 했고, 사회적 지위와 체면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당시 러시아 사회는 여성의 감정적 자율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안나는 점점 더 고립되고 배제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감정을 왜곡하거나 외면하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의 판단과 감정의 진정성을 믿었다.

 

안나에게 사랑은 삶의 중심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녀가 파멸한 것은 사랑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절박함은 엠마의 그것과 달리, 감정의 실체에 대한 확신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 여성의 비극 – 누구의 사랑이 더 절박했는가?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는 모두 사랑을 좇았고, 사랑을 위해 삶을 걸었다. 그러나 엠마의 사랑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다면, 안나의 사랑은 현실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엠마는 자신이 느끼고 싶은 감정을 반복해서 상상하며, 실제 인간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드라마 같은 감정의 서사’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자극이었고,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상대의 진심에도 무감각했고, 결국 고립과 파산 속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반면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에 진정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 했지만 실패한다.

 

그녀는 외면당하고, 질투와 불안 속에서 무너진다. 그렇지만 그 감정은 끝까지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었고, 사랑의 진실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엠마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결국 “누구의 사랑이 더 절박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엠마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절박했고, 안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박했다. 전자는 감정 중심의 절박함이고, 후자는 관계 중심의 절박함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안나의 사랑은 더 성숙했고, 그만큼 더 절박했다.

 

엠마 보바리는 감정을 소비하려 했고, 안나 카레니나는 감정을 실현하려 했다. 둘 모두 사랑에 삶을 걸었지만, 그 사랑의 깊이와 방향은 전혀 달랐다. 엠마의 절박함은 허상을 붙잡기 위한 것이었고, 안나의 절박함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안나의 사랑이 더 절박했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현실을 견디려 했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삶도 함께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