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하라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버렸는가?
– 생존을 선택한 여성, 감정보다 현실을 택한 인간의 이야기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어떻게 사랑과 전통, 감정을 버리고 생존을 택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단순한 ‘연애소설 속 여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욕망과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많은 독자들이 스칼렛을 ‘이기적인 여자’, ‘무정한 인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통해 진짜 삶의 조건과 인간의 본능적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스칼렛은 전쟁이라는 절대적인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감정, 평판, 여성으로서의 고상함, 사랑—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오직 살아남는 데 집중한다.
이 글에서는 스칼렛 오하라가 무엇을 버렸고, 왜 그 선택이 필요했으며, 그녀가 상징하는 ‘여성의 생존 전략’이 지금까지도 왜 유효한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스칼렛은 사랑보다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운 여성이다
스칼렛은 처음부터 생존형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부유하고 아름답게 자라났고,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감 넘치는 소녀였다. 그녀가 가장 원했던 것은 애슐리라는 남자의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위해 경쟁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진다. 집안은 몰락하고, 가족은 흩어지며, 먹을 것도 없고 미래도 불확실해진다. 이때 스칼렛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것을. 그녀는 손에 흙을 쥐고 맹세한다. “나는 결코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다.” 이 장면은 감정이 아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인간의 전환점이다.
이후 스칼렛은 철저히 전략적으로 살아간다.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인물로 바뀐다. 그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정 없는 결혼도 감행하고, 비난을 무릅쓰고 사업을 운영한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이상적인 삶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그리고 그 생존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스칼렛이 버린 것은 단지 사랑이 아니라 ‘여성성의 이상’이었다
스칼렛의 선택은 단순히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여성에게 주어진 ‘고상한 여성상’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그녀는 전통적인 여성들이 갖춰야 할 자질—온유함, 순종, 감정의 절제, 희생—을 철저히 무시한다.
대신 그녀는 거칠고 공격적이며,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분명히 드러내는 인물이다. 전통적인 여성 인물인 멜라니가 “이상적인 여성상”을 대표한다면, 스칼렛은 그것을 깨뜨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실주의자다. 그녀는 비즈니스를 통해 남성 중심의 경제 구조에 뛰어들고, 자신에게 의존하던 사람들을 오히려 돌본다. 그녀의 행동은 주변인들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강한 생존력을 보여준다.
스칼렛은 ‘여성은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냉정한 계산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 그녀가 버린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한 모든 ‘아름다운 이상’들이었다. 그녀는 이상보다 현실을 선택했고, 감정보다 구조를 읽었다. 그 결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자신을 지켜냈다.
스칼렛의 생존은 성공이었는가, 고립이었는가?
스칼렛은 결국 자신이 원한 많은 것들을 손에 넣는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며, 가족을 부양했고, 위기의 시대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녀의 생존은 곧 고립이기도 했다. 그녀는 애슐리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레트 버틀러마저 떠나보낸다. 그녀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움직였지만, 감정의 연결고리는 점점 끊어졌다. 이는 그녀가 단지 사랑을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마저 ‘계산 가능한 것’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삶을 이겨냈지만, 동시에 삶의 일부를 잃었다. 우리는 스칼렛을 비난할 수 없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녀는 도피하지 않았고, 눈앞의 현실에서 도전했고,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생존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스칼렛은 전쟁에 이겼지만, 내면의 평화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다시 한 번 그녀가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내일은 또 다른 날이야.”
스칼렛 오하라는 단지 사랑을 포기한 여성이 아니라, 시대와 구조 속에서 감정을 희생하고 현실을 택한 생존자였다. 그녀는 이상적 여성상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설계했다. 그녀의 비극은 너무 이성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고 버틸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결과였다. 그녀는 이기적인 인물이 아니라, 살아남는 법을 배운 인간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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