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23)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창조자인가, 피해자인가?

teemoessay 2025. 7. 11. 12:15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창조자인가, 피해자인가?

– 피조물이 된 창조자, 윤리를 잃은 과학의 그림자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괴물 이야기로 종종 오해되지만, 이 작품은 ‘인간이 만든 존재’가 되묻는 창조와 책임, 과학과 윤리, 존재와 인정에 관한 근원적인 철학적 소설이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열정에 사로잡혀 죽은 자의 신체를 조합해 생명을 창조한다. 그는 창조에 성공하지만, 곧바로 그 피조물의 외형에 충격을 받고 도망친다. 남겨진 존재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한 괴물이라 여기며 고통을 겪는다.

 

작품은 외형의 괴물성이 아니라, 그 괴물이라 불린 존재의 내면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고통스러웠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도덕적 반전을 제시한다. 괴물은 정말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사회와 창조자가 만들어낸 비극의 피해자였을까?

 

이 글에서는 괴물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존재의 고통 속에서 자기 언어와 윤리를 창조한 역설적 주체였는지를 탐구하며, 동시에 그가 인간에게 던지는 책임과 윤리의 질문에 주목한다.

문학 속 인물 분석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는 창조가 아니라 도피였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 지식과 인류 향상을 위한 이상으로 창조를 시작했지만, 그의 동기는 순수하지 않다. 그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자기 우월성과 신적 권능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피조물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 그는 창조자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채 도망친다. 이는 창조가 완성된 순간 오히려 그 창조가 부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괴물은 이름도 없다. 그는 자기 이름조차 갖지 못한 존재, 즉 존재의 가장 기본적 정의조차 부여받지 못한 피조물이다. 이는 곧 존재의 부정이며, ‘창조’가 아닌 ‘방치’에 가깝다.

 

빅터는 자신이 만든 생명체가 지닌 인간적 감정, 학습 가능성, 정체성의 성장을 무시하고, 그를 단지 실패작 혹은 실험의 산물로 취급한다. 피조물은 창조된 순간부터 철저히 고립되었으며, 인간 사회에 접근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 점에서 빅터는 창조자라기보다 창조를 흉내 낸 무책임한 창조 행위자이며, 괴물은 단순한 피해자라기보다 존재의 외로움 속에서 자기 존재를 스스로 정의해야 했던 ‘창조된 자’이다.

 

괴물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윤리적 주체가 되려 한 존재다 

 

괴물은 단순히 고통을 겪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말하고 읽고 느끼고 사랑하고자 하는, 전인격적 존재로 성장하려 한 인간형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언어를 익히고, 문학을 읽고,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려 한다. 그는 숲에서 델라세이 가족을 관찰하며 인간의 사회성과 정서를 배우고, 그들과 관계 맺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고, 그는 계속해서 배척당한다. 결국 그는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고, 그 결과로 복수심을 품는다. 하지만 이 복수는 단순한 파괴적 욕망이 아니다. 그는 빅터에게 “나에게 동반자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이 악하지 않고자 노력했음을 증명한다. 즉,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끝까지 원했다.

 

하지만 그 요청마저 거절당한 후, 그는 마침내 ‘괴물이 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에 복속된다. 이 지점에서 괴물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윤리적 주체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다 좌절된 존재가 된다. 그의 선택은 폭력적이었지만, 그 이전의 모든 노력은 인간성과 도덕성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존재를 지우려는 사회에 대해, 자기 존재를 되묻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타자였다.

 

괴물은 창조된 자였지만, 결국 ‘창조자’가 되기를 원했다 

괴물은 창조주의 책임 방기 속에서 철저히 버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는 빅터에게 동반자 창조를 요구하며,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삶의 조건을 자율적으로 구성하려 시도한다.

 

이는 단순한 동정의 요청이 아닌, 존재의 조건을 스스로 다시 창조하려는 행위다. 이 점에서 그는 단지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윤리와 관계의 구조를 재설계하려는 창조자의 위치로 올라선다.

 

그러나 이 시도는 좌절되고, 그는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그는 빅터가 죽은 뒤 그 시신 앞에서 오열하며 “나는 너를 증오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사랑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괴물이 진정한 ‘괴물’이 아니었음을, 오히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사회와 창조자의 외면이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괴물은 인간에게 감정과 윤리, 책임과 연민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질문을 남긴 채 자기 스스로를 소멸함으로써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 존재로 남는다. 이 시점에서 괴물은 단지 피해자가 아닌, 창조되지 못한 윤리, 실현되지 못한 인간성을 몸에 지닌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외면당한 존재였지만, 말하고 사랑하고 관계 맺기를 원했던 전인격적 존재였다. 그는 존재의 고통 속에서 윤리를 세우려 했고, 결국 스스로를 창조하려는 존재로 성장했다.

 

그는 실패한 실험이 아니라, 인간성과 책임을 되묻는 실존적 타자였다. 괴물은 우리가 외면한 책임의 그림자이자, 인간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인간들의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