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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38)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진짜 괴물인가, 인간인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진짜 괴물인가, 인간인가?

– 인간이 만든 타자, 책임을 회피한 창조의 윤리적 종말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한 괴물 이야기나 SF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과학과 윤리, 창조와 책임,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담고 있다. 특히 작품 속에서 흔히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는 사실 그 자체로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울에 가깝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해낸 후, 그 창조물을 버리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독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괴물은 진짜 괴물인가, 아니면 괴물을 만든 인간이 진짜 괴물인가?

 

이 글에서는 외형적 흉측함으로 ‘괴물’이라 불리지만, 내면적으로는 끊임없이 사랑과 인정, 존재의 의미를 갈망했던 그 창조된 존재를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윤리적 시각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책임 없는 창조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현대적 질문과도 맞닿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에 의해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존재의 기록이다.

문학 속 인물 분석 프랑켄슈타인

 창조는 곧 책임인가 – 프랑켄슈타인의 결정과 회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 호기심과 야망을 바탕으로, 죽은 조직들을 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그는 스스로 ‘신’과 같은 창조자의 위치에 서게 되지만, 막상 자신의 피조물이 살아 움직이자마자 공포에 휩싸여 도망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인간의 실수 이상의 문제를 드러낸다.

 

빅터는 자신이 만든 존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며, 그를 사회로부터 숨긴 채 외면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창조는 책임을 수반하는가?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진보를 통해 ‘가능한 일’을 현실화했지만, ‘그 일이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이 만든 존재가 인간 사회에서 외면받고, 결국 복수심에 불타 폭력에 이르게 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메리 셸리는 이 과정을 통해 무책임한 창조가 어떤 윤리적 재앙을 낳는지 경고한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든 것은 문제의 시작이 아니라, 괴물로 만들도록 방치한 그의 무책임이 진짜 비극의 원인이었다.

 

괴물은 본성상 악했는가, 아니면 그렇게 학습된 존재인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였을까? 아니다. 그는 처음 깨어났을 때, 세상을 낯설지만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인간을 흠모했다. 그는 몰래 한 가족을 관찰하며 언어를 익히고, 인간의 감정과 사회성을 배우려 노력한다. 그는 그들을 돕기도 했으며, 자신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불러왔고, 결국 그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의 존재를 단지 ‘기괴함’으로 판단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악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 사회로부터 반복적인 거절과 학대를 받으며 점차 복수심을 키워간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창조자에게 버림받았고, 자신이 바라는 것인 사랑, 연대, 이해를 끝내 얻지 못했다. 그의 악행은 선천적 본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지속적인 소외와 차별이 만든 결과였다.

 

메리 셸리는 이 과정을 통해 ‘괴물’이라는 규정 자체가 외형이나 탄생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시선과 대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괴물은 괴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괴물처럼 다뤄진 인간의 비극적 반응일 뿐이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 인간의 윤리 부재가 만든 참극 

괴물이 여러 사람을 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폭력은 처음부터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절망과 배신의 반복 끝에서 터져 나온 결과다. 그는 복수를 위해 프랑켄슈타인의 가족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결국 그의 인생 전체를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피조물의 잔혹함을 보지만, 동시에 그가 끝내 놓지 않았던 ‘이해받고 싶은 갈망’을 보게 된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에게 “당신이 나를 만들었고, 나에게 아무도 없었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그가 얼마나 외롭고 절박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이 죽고 나서야 그는 복수를 멈추고, 자살을 선택한다. 이는 단순히 죄의 대가라기보다는, 존재 이유를 잃은 피조물의 자멸이었다.

 

메리 셸리는 이 결말을 통해 ‘괴물’은 외형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을 타자화하는 인간의 윤리 부재가 만들어낸 것임을 지적한다. 진짜 괴물은 괴물이 아니라, 그를 만들고도 버린 인간, 사회, 그리고 시스템이었다.

 

이 작품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윤리가 결여되면 창조는 파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만든 존재였고, 이해받지 못해 무너진 희망이었다. 메리 셸리는 그를 통해 묻는다.
“우리는 타인을 괴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책임 없는 창조는 누구를 파괴하는가?”

 

괴물은 단지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민낯이 비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