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35) 햄릿의 클라우디우스는 왜 형을 죽였는가?
클라우디우스는 왜 형을 죽였는가 – 권력과 죄책감 사이의 『햄릿』 윤리학
‘살해자는 악인가, 상황을 통제하려던 인간인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윤리, 복수, 정치적 음모가 얽힌 복합적인 비극이다. 많은 독자들은 햄릿의 고뇌와 우유부단함에 집중하지만, 작품의 서사를 결정짓는 진정한 ‘기폭제’는 클라우디우스라는 인물이다.
그는 햄릿의 숙부이자, 동시에 형인 구 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인물로, 이야기 전개상 명백한 ‘악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 인물을 단순한 범죄자로만 만들지 않았다. 클라우디우스는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애쓰는 복합적 심리를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게 된다. 클라우디우스는 단지 권력을 탐한 악인이었는가? 아니면 복잡한 정치 구조와 인간적 욕망 속에서 스스로를 던진 실존적 인간이었는가? 이 글에서는 『햄릿』 속 클라우디우스를 도덕적 판단의 틀에서만 바라보는 대신, 권력과 죄책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는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죄에 짓눌려 무너지는 비극적 인물이었다.
클라우디우스는 왜 형을 죽였는가 – 단순한 야망을 넘어선 선택
표면적으로 클라우디우스는 야망에 사로잡혀 왕위를 얻기 위해 형을 독살한 냉혈한이다. 그는 구덴마르크 왕을 잠자는 사이 독살했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곧바로 왕비인 거트루드와 결혼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까지 확보했다. 이 모든 과정은 명백히 반윤리적이며, 세속적 욕망의 결정판처럼 보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를 단지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리기보다, 정치적 생존의 한 형태로서 범죄를 저지른 인간으로 묘사한다. 극 중 클라우디우스는 새로운 왕권 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햄릿'이라는 변수에 계속해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위험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인간이었다. 그의 살해는 인간적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통제와 질서라는 명분 아래에서 발생한 극단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는 그를 더더욱 비극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로 인해 얻은 권력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권력 때문에 자신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악인인가, 아니면 죄책감에 갇힌 인간인가?
『햄릿』에서 클라우디우스는 명백히 죄를 자백하는 장면을 가진 드문 악인이다.
그는 극 중 "내 죄는 냄새나며 하늘에 닿는다"라는 고백을 하며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고, 기도하는 장면에서 인간적 갈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악인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오셀로』의 이아고나 『리처드 3세』의 리처드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만, 클라우디우스는 자기 고백을 통해 죄와 도덕의 경계를 인식하고 괴로워한다. 그는 기도를 통해 속죄하고자 하지만, “나는 왕권과 부, 왕비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기도의 진정성을 스스로 부정한다. 이 장면은 우리가 그를 도덕적 악인으로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를 말해준다.
그는 죄를 지었지만, 그 죄에 대한 윤리적 자각을 지닌 인간이었다. 이 점에서 클라우디우스는 도덕을 외면하는 냉혹한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죄의 굴레 속에서 인간성을 포기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비극적 존재다. 그는 악을 실행했지만, 그 악을 끝까지 견디지 못한 사람이다.
클라우디우스는 결국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클라우디우스는 왕위를 얻었고, 정치적 권력과 체제를 장악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통제와 공포, 불신의 연속이었다. 그는 햄릿이 자신의 죄를 눈치챘을까 끊임없이 의심했고, 광기의 탈을 쓴 햄릿을 죽이기 위해 끝없이 모략을 꾸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타인의 복수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이었다. 햄릿이 클라우디우스를 죽일 기회를 얻었을 때, 그는 “이 순간은 기도 중이니 복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칼을 거둔다.
그 장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아이러니한 질문을 던진다. 죄책감이 있는 악인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클라우디우스는 결국 라어티즈와 햄릿의 복수극 속에서 살해당하지만, 죽기 전까지도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고, 구할 자격도 없다고 느꼈으며, 스스로를 위해 아무것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였고, 그 끝에서 인간으로서의 회개보다는 왕으로서의 책임과 무너짐을 선택했다.
셰익스피어는 그를 통해 악은 단순한 본성이 아니라,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일 수 있음을 말한다. 클라우디우스는 그 무게에 짓눌려 산 자였고, 결국 그것에 무너진 자였다.
클라우디우스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인간적 욕망과 정치적 통제 욕구 사이에서 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햄릿』은 그를 통해 묻는다. 진정한 죄인은 누구인가 – 죄를 짓고도 자각하지 못한 자인가, 아니면 죄를 지은 뒤에도 끝까지 그 무게를 짊어진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