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30)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위해 인간을 버린 괴물인가, 진실한 창조자인가?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위해 인간을 버린 괴물인가, 진실한 창조자인가?
– 예술은 인간을 초월하는가, 인간을 파괴하는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20세기 초 유럽 문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예술가 캐릭터 중 하나를 창조해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어, 예술을 위해 모든 사회적 관계와 인간적 의무를 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안정된 증권 중개인으로, 가정이 있고 직업이 있으며, 전형적인 중산층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돌연 가족도, 직업도 버리고, 파리와 타히티로 떠나 순수한 예술 창조를 향한 광적인 집념을 실현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타인을 상처 입히고, 가족을 파괴하며, 냉정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은 그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저버린 괴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과연 스트릭랜드는 단순히 인간성을 잃은 예술가일까? 혹은 세상의 시선과 도덕적 규범을 넘어서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창조자였던 것일까?
이 글에서는 스트릭랜드의 선택을 ‘비도덕적인 이기주의’로만 보지 않고, 인간 존재의 깊은 충동과 예술이라는 절대 가치 사이의 충돌로 해석하며, 그가 정말 괴물이었는지, 아니면 창조자였는지를 고찰해본다.
스트릭랜드는 타인을 외면했지만, 스스로를 가장 정직하게 살았다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아무런 말 없이 떠나고, 타인의 희생을 감수하며 오직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그의 삶은 이기적이고, 감정적으로 냉혹해 보인다. 그는 누군가를 위로하지도 않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태도 속에, 그는 가장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존재로 나타난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면을 쓰지 않으며, 위선적인 역할극을 연기하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는 “나는 그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은 그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는 타인의 기대와 도덕을 외면했지만, 동시에 자기 내면의 충동에 대해 일말의 타협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예술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이나 성취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타인을 속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가장 투명하게 선택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스트릭랜드는 비도덕적인 괴물이 아닌, 실존주의적 결단의 화신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온기를 잃었지만, 예술의 진실에 도달했다
스트릭랜드가 파리에서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집념, 타히티에서 삶을 모두 버리고 끝내 화폭에 완전한 세계를 담아냈던 행위는,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인간의 형상과 세계의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가장 근본적인 감각의 언어로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화려한 기법이나 시장의 취향에 아부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미적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그렸다.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은 죽은 후에야 세상의 인정을 받지만, 그가 추구한 예술은 처음부터 사회적 명성이나 경제적 성공과는 무관했다.
그는 삶을 파괴했지만, 예술의 창조는 결국 인간 존재의 다른 차원을 드러내는 언어였다. 그의 그림은 무책임한 괴물이 그린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잃으면서도 단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절박한 표현이었다.
그는 인간적 온정을 잃었지만, 그 대신 인간 영혼의 깊은 심연을 포착했다. 스트릭랜드는 윤리적 인간은 아니었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오직 진실에 응답한 존재였다.
스트릭랜드는 괴물이었고 동시에 창조자였다
스트릭랜드를 단순히 영웅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그는 타인에게 분명히 상처를 주었고, 무책임했으며, 도덕적 기준에서는 용서받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현실에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이 점에서 그는 괴물성과 창조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예술은 때로 인간을 초월하지만, 그 초월은 인간적 고통 위에 세워지기도 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모순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감히 살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았고, 우리가 감히 도달하지 못하는 감각의 세계에 닿았다. 그의 삶은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비극적 완성의 형태였다. 그는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바로 그 인간다움의 결핍 속에서 예술이 인간을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거였다.
『달과 6펜스』는 스트릭랜드를 찬양하지도, 완전히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인간 욕망의 본질, 창조의 대가, 그리고 진실을 향한 집착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인물이다. 스트릭랜드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 괴물이 만든 예술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그는 윤리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창조적으로는 가장 완성된 인간일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는 인간적 도덕과 공동체적 책임을 외면한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진실한 예술에 도달하려 한 창조자였다. 『달과 6펜스』는 그를 통해 묻는다. 예술은 인간을 살리는가, 아니면 파괴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스트릭랜드는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창조의 욕망과 인간적 한계의 충돌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