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인물 분석

문학 속 인물 분석(31) 자베르는 정말 악인인가? – 법과 양심 사이의 비극

teemoessay 2025. 7. 19. 12:46

자베르는 정말 악인인가? – 법과 양심 사이의 비극

『레 미제라블』 속 법의 수호자, 그는 왜 무너졌는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사회의 빈곤, 혁명, 정의와 용서, 인간 존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룬 걸작이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 장 발장 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독자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 중 하나는 자베르다. 그는 이야기 전반에서 장 발장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경찰관으로, 법과 질서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자베르는 종종 냉혹한 존재, 혹은 장 발장의 삶을 망치려는 집착적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과연 그는 단순한 ‘악인’이었을까? 이 글에서는 자베르를 단지 법의 상징이 아니라, 법과 양심 사이에서 끝내 균형을 잃은 비극적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는 인간을 탄압하려는 악의 구현이 아니라, 도덕적 딜레마 앞에서 자신을 파괴당한 윤리적 인물이었다.

 

그의 선택과 몰락은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우리 모두의 내면을 반영한다. 자베르는 단순한 적대자가 아니라, 인간 윤리의 가장 극단적인 충돌을 체현한 인물이었다.

문학 속 인물 분석 자베르의 법과 양심

자베르는 법을 믿은 것이 아니라, 법이 곧 도덕이라 믿었다

자베르의 신념은 단순한 직업적 책임감을 넘어선다. 그는 법을 단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윤리의 최종 형태이자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 죄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의 눈초리 속에서 살아온 그는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 되기 위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이 ‘법’이었다.

 

자베르는 스스로를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구원해줄 기준으로서 법을 절대화했고, 그렇기 때문에 법의 기준을 어기는 모든 이는 자동적으로 악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장 발장이 비록 사람들을 구하고, 선을 실천하며 살아가도, 자베르의 눈에 그는 '파리의 쓰레기처럼 썩은 죄수'에 불과했다.

 

자베르는 선을 판단할 수 있는 도구를 오직 법에 의존한 채 살아온 인물이며, 그래서 그에게 인간적인 감정이나 맥락은 법 앞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가 악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눈에선 오직 법의 잣대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베르는 법을 따르는 것이 곧 윤리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었으며, 그 믿음이 절대화되었을 때, 그는 오히려 도덕을 저버리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자베르는 악인이 아니라, 딜레마에 사로잡힌 실존적 인간이었다

자베르의 진짜 비극은,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법이 윤리와 충돌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시작된다. 그는 장 발장을 체포할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고, 끝내는 그에게 목숨까지 구원받는다.

 

그 순간 자베르는 처음으로 자신의 도덕 기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는 범죄자인데, 어떻게 나보다 고결한가?”라는 내면의 질문은, 자베르가 살아오며 쌓아올린 모든 가치체계를 무너뜨린다. 그에게 있어 장 발장의 자비는 감동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기반을 위협하는 근원적 의문이었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법에 자신을 일체화시켜왔다. 장 발장을 다시 체포하지 않고 풀어주는 선택은, 자베르가 인간적 판단을 처음으로 허용한 행위였고,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법도 지킬 수 없고, 양심도 온전히 따를 수 없는 중간지대에 놓인 인간, 그것이 자베르의 실존이었다. 그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고, 누군가를 고의로 해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절대적 질서가 무너졌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감당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자베르의 자살은 패배가 아닌, 자기 신념의 한계 선언이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놓아준 후, 철저한 내면의 무너짐을 경험한다. 그는 양심의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신념과 자기 정체성이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이든 더 이상 진실하게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 자베르의 자살은 단순한 절망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윤리적 존재로서의 자기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선언이다. 그는 타협을 모른다. 장 발장처럼 스스로를 변혁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살아 있는 한 ‘불순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 불순함에서 스스로를 단죄한 것이다. 이는 악인의 말로가 아니라, 윤리의 한계를 살아낸 인간의 최후라고 볼 수 있다. 자베르는 법의 노예도 아니었고, 정의의 위선자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안의 질서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차라리 소멸을 택한 고독한 인간이었다.

 

그의 죽음은 체제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이 윤리와 법 사이에서 감당할 수 없는 균열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상징한다.

 

자베르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법과 도덕, 사회적 질서에 대한 절대적 신념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의 복잡한 현실 앞에서 그 신념이 무너졌을 때, 자기 존재를 지킬 수 없었던 비극적 인물이었다.

 

『레 미제라블』은 자베르를 통해 묻는다. 우리가 믿어온 정의는 과연 언제까지 윤리일 수 있는가? 그리고 법은 인간을 지킬 수 있는가, 아니면 인간을 파괴하는가?